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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안철수 의원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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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의 생애


장미대선이 약 한달 남은 시간

후보자 선택에 도움이 되고자

위키백과의 내용을 가져왔습니다.(존칭생략)


학창시절

안철수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60명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독서는 매우 좋아하여 매일 몇권씩 읽었으며

활자 중독증 이었던것 같다라고 회고 했다.

하지만 교과서는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주로 탐독하였다.

고3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여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당시 엘리트가 많던 서울대 의대에서 경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할때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당시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는다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마침 컴퓨터 언어 공부를 마친 안철수는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1을 만들게 되었다.

미국의 백신 대기업들보다도 1년 빨리 만든것이었다.

 그렇게 7년간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보내며

이중생활을 했다.

당시 백신은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안철수를 제외하고 백신을 만든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안철수는 군입대 전에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렸는데,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지 않으면

3개월동안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며 군입대날

V3최초 버전을 만들고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였다.


대학생 때 만난 부인은 캠퍼스 커플로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당시 궁핍한 학생이었던 안철수는 아무것도 

없이 같이 살자며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부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과 결혼하여

자녀는 딸 안설희가 있다.

벤처기업 CEO 생활

의사와 백신을 개발하는 이중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년 2배씩 증가하여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반년간의 고민 끝에 의사를 포기하고

더 재밌고 잘 할 수 있는 백신 제작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백신 사업은 돈벌이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어 정부 부처를 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으며 

삼성에도 찾아가 삼성 로고를 달고 배포하는 조건으로

돈과 인력을 지원해달라 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리하여 안철수는 창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이다.

창업후에도 개인에겐 무료 배포를 철칙으로 하였으며

기업에만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다.

그렇게 탄생한 백신이 V3 lite 였다.

하지만 기업이윤은 걱정처럼 적었으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했다.

회사를 세우고 몇 개월 뒤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중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달러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재벌그룹인 맥아피 회장이 직접 PT를 하며 설득하였으나

단번에 거절하였다. 안철수는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 하였고 한국의 백신이 미국의 거대 업체에

장악당하는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하였다고 한다.

사실 맥아피는 전 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당시 안철수 연구소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지 못하여

인수제안을 하였고 인수후 안철수연구소를 폐기하고 

미국 백신으로 한국 사업을 독점할 야욕이었다.

- 출처 : 위키백과

안철수 의원의 아버지 안영모씨는 병원원장이라

큰 어려움 없이 살았을거란 생각이지만 (금수저?)

가정사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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